노랑풍선과 함께한 동유럽 여행기 (9/5~9/13)(1)

임*만 님 2019.09.19 조회 3846

아래 내용은 고객님께서 직접 다녀오신 여행 상품에 대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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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풍선과 함께한 동유럽 여행기 (9/5~9/13)

​ 9/5 金 (1일 차) ​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아직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우리 딸, 지윤이를 깨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아내와 나는 새벽 4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동유럽 여행의 시작이다.

일정은 7박 9일이지만 글을 써 보니 귀국하는 날 해는 서쪽을 지고 비행기는 동쪽으로 날아가니까 하루는 그냥 사라져 8일 이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분당이고 올해 나이 60세, 건설 분야에 공사업을 하는 자영업자이다.

뮌헨 가는 10시 15분 비행기를 타려면 야탑에서 5시 반에는 공항버스를 타야 했다.

야탑정류장에서 5시 20분에 공항버스를 타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몇 자리가 빈 상태로 새벽 바람을 스치며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공항에 도착하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동유럽 여행에 동행 할 인솔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동유럽 회원님 13번 홈으로 모이세요"

아내와 내가 뮌헨까지 타고 갈 비행기는 독일 루프트한자(LH719 LUFTHANSA) 항공이다.

우리 일행은 뮌헨에 도착해서 합류한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탔다. 뮌헨까지 10시간 30분이 걸린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동유럽 역사 문화여행"을 읽으면서 기내식 두 번 먹고 나니 도착시간 30분 후 뮌헨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무언가에 집중하니 시간이 빨리 흐른다.

뮌헨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껴보니 여기 시간으로 오후 두 시를 알리며 옅은 빗줄기가 우리를 반긴다.

오늘은 9월 5일, 비가 와서 그런지 쌀쌀했다. 뮌헨공항에서 일행들과 합류하고 인솔자(문현정님)의 안내에 폴란드인 운전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투어 버스에 올랐다.

첫 일정으로 뮌헨 시내 마리엔 광장에 있는 독일에서 제일 크다는 "호프 브로이하우스"에 갔다. 3,000명이 동시에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매년 9월 하순에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가 열린단다.

오후 5시에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워졌다. 맥주를 마시든 쇼핑을 하든 아니면 교회 탑에 올라가 시내를 바라봐도 좋을 거라고 인솔자는 말한다.

비가 조금씩 계속 내렸고 날씨도 더 쌀쌀해져 너무 추웠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가까운 휴대폰 매장에 들어가서 광장 앞에 보이는 시청 신청사를 바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높은 시계탑에서 종소리와 함께 조각 인형이 돌면서 춤을 추는 광경이 보였다.

많은 관광객이 쳐다봤고 나도 보고, 아내도 보면서 참 유럽은 굳이 돈 안되는 일에도 무척 열심히 한다.

그러나 "이런데서 삶의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이어서 저녁식사로 독일식 돼지고기에 감자가 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한국과 독일의 시차가 7시간 난다. 지

금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인데 새벽에 밥 한끼 더 먹는 셈이다.

마리엔 광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투어 버스로 이동해서 식당으로 갔다.

우리는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부부와 동석했다.

그 부부는 청주에서 왔고 아들이 보내주어서 여행하게 됐다며 아들이란 말에는 자랑스런 아들이란 표정이 읽혀진다.

청주 팀은 맥주를 주문하고 우리에게 한 잔을 건네 줬다. 맥주에 곡주 맛이 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벌써 자야 할 시차를 느끼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 이름은 "Best Westerm Hotel"이었다.

우리는 작고 아담한 방을 배정받고 나는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깊은 잠에 빠졌다. ​

​ 9/6 土 (2일 차) ​

새벽 한 시에 눈을 떴다. 다시 잠자다 뜨니 두시, 또 자다 눈을 떠보니 세시, 그래서 일어나 어제 일들을 적어 나갔다.

오늘 일정은 퓌센과 잘츠부르크이다. "퓌센"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노이슈반타인 성"이었는데 동화 속에 나오는 성처럼 아름답다.

5시가 조금 지나 샤워를 하고 6시에 이른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나섰다.

​평상시에는 아침에 녹즙을 마시는데, 앞으로 여행기간 동안 매일 "유럽 스타일" 아침을 먹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아침에 먹는 빵과 커피, 치즈 맛이 하나같이 고소하고 포근하다.

아내도 무척 맛있게 먹는다.

마침 청주 팀 부부가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는 기대에 찬 여행을 생각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

이 아침이 상쾌하다. 투어 버스가 7시 30분에 출발 하는데 한 시간이나 남아서 나는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

저 멀리 고속도로, 그리고 초원과 구릉 지대가 보인다. 아마도 시내에서 많이 벗어난 듯 하다. ​

아침 공기가 무척 신선하다. ​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지나 "노이슈반타인 성"에 도착했다. ​

깊은 산속에 덩그러니 성 한 채가 있었고 주변에는 몇 개의 건물이 아주 적당히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아! 이런 모습이 진정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성을 지은지 약 150년 정도 됐지만 막 지은 것 처럼 멀쩡하고 깨끗하다.

​정말이지 동화 같은 곳이다. 월트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니 옛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지혜가 보인다. ​

이 곳 숲속의 아침 공기는 초겨울 느낌마저 난다. 한국에는 아직 늦 여름인데 지도를 보니 독일의 위치가 우리나라보다 한참 더 북쪽이었다.

성 안의 마당까지 둘러보고 쇼핑 코너에 가니 그림 옆서가 보였다 "노이슈반타인 성"을 그린 그림이 너무 이쁘다. ​

여기서 아내의 얼굴과 함께 찰깍!

​산 길을 많이 걸었더니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출출하다. ​

점심은 중식 음식이었는데 독일식 퓨젼 요리 같았다. ​

국 같은 스프에 소고기 조림, 치즈 섞인 튀김, 배추를 익힌 야채까지 다 맛있었다. ​

아내도 일행도 무척 만족스런 모습이다. 패케지 투어에서 짜놓은 식단으로는 훌륭하기까지 하다.

​여행사들의 무한 경쟁이 낳은 결과 일까? ​

이제 우리는 한 때 유럽을 지배했던 오스트리아로 간다.

​그 첫 번째 코스인 잘츠부르크를 3시간 반 달렸다. ​

나는 달리는 차안에서 오스트리아 홀리데이를 읽었는데 책 속에서 음악가의 이름이 막 나온다. ​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2세, 말러, 쉰베르크 그리고 오스트리아 태생은 아니지만 여기서 활동한 음악가 베토벤 ,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

나는 한 때 막연히 "왜 유명한 음악 예술가들이 여기에서 많이 태어났고 비엔나가 음악의 도시가 된 이유가 뭘 까"라고 생각 한 적이 있었다. ​

그런데 이 책에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음악을 좋아했고 많은 음악가가 성공하기 위해서 비엔나에 몰려왔다"고 적혀있다. ​

이탈리아에도 예술과 문화를 사랑한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를 후원하여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 한 나라의 지도자의 관심이 역사를 바꾸는 것 같다. 그러나 영원하지도 않다. 언제가는 그 권세도 몰락하니까ᆢ

​ 역사가 있는 나라의 여행은 순간 순간 과거와 현재를 왔다가 가는 기분을 느껴서 좋다. ​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곳으로 간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것을 보지만 서로가 갖는 느낌은 다르다.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퍼 담아 와야겠다. 두 시간을 달렸을 쯤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렸다.

유럽의 고속도로에는 아우토반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무조건 무제한으로 달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구간에는 지정 속도 제한도 있고 화물차나 버스 등 공공 차량은 속도를 제한 한다. 그래서 우리가 타고 있는 투어 버스도 속도 제한에 2시간 마다 휴식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니 규칙이라는 것이,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편하다.

그리고 유럽의 대부분의 휴게소는 화장실 들어갈 때 1유로 내고 영수증을 갖고 휴게실 슈퍼에 식품을 사면 0.5유로 깍아 준다. ​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는 굉장히 모범적이다. 나는 에소프레스, 아내는 카페라테를 마시며 유럽의 커피를 음미해 본다.

우리는 아무 말 안해도 눈빛으로 서로의 분위기를 느낀다. 아내와 같이 오기를 잘했다

​독일 국경을 지나 오스트리아 들어와 20~30분이 지나니 왼쪽에 광활한 호수가 보인다. ​

구글 지도를 보니 스위스 레만호수 보다 조금은 작지만 육안으로는 바다와 같다.

오른쪽으로는 초원이 펼쳐져 있고 간간히 보이는 붉은 지붕의 목조 주택들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

"난 여행자의 시선으로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거야, 이곳에 사람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들도 걱정이 있겠지만"

내가 잠시 현실에서 벗어난 것 같다. ​

저 넓은 초원에 잡초가 많이 자라면 집주인은 의무적으로 잔디를 깍아 주여야 한단다 안그러면 벌금을 문다고 한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하니 60대 한국인 여성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녀는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설명을 한 뒤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계단을 알려준다. ​

이 영화가 1969년에 개봉됐으니 50년 전 일이다. 한 편의 영화로 이 동네가 이렇게 까지 유명해 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벨 정원에서 바라본 잘차흐 강 건너편에 솟아 있는 호헨잘츠부르크 성은 1077년에 지어졌다. 그 당시에 대주교의 거주지로 , 감옥으로도 쓰여 졌다는 이 성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안에 까지 들어가 봐야 했지만 이 여행 페케지에는 없다.

​거기에서 보는 알프스 전경이 백미라는데... ​

잘츠부르크에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는 잘차흐 강물이 흐른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마카르트 다리 좌우 난간에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하다. ​

가이드 말이 어느나라 다리는 사랑의 자물쇠로 무너졌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그 당시 뉴스를 인용해 본다.

​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센강의 "퐁데자르" 다리 난간이 자물쇠 무게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파리시는 퐁데자르의 2.5m 길이 철제 난간 두 개가 무너져 통행을 일시 통제하고 무너진 난간을 나무판자로 교체한 뒤 재개통 했습니다. 보행자 전용 다리인 퐁데자르에는 지난 2008년부터 자물쇠가 걸리기 시작하면서 155m 길이 난간 전체가 자물쇠로 채워졌습니다. ​

​잘차흐 강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 500년 전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온 케트라이데 거리에서 상점을 구경하고는 약 10분 정도 걸어서 모차르트 생가와 모차르트가 어린시절 다니던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갔다. ​

774년에 지어진 성당은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6,000개 파이프가 든 파이프 오르간은 유럽에서 가장 큰 것이란다.

"잘츠부르크도"도 제대로 보려면 이틀은 걸릴 듯하다. 저녁 6시가 되어 오늘 투어 일정은 이것으로 끝내고 우리는 모차르트 초코렛을 사러 쇼핑장으로 향했다.

​귀국하면 나누어줄 초코렛, 치약 등 10만원치 수북히 사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일식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저녁 일식은 도시락 메뉴였는데 도시락 맛도 별미!

​호텔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되었다. "7day premium Hotel" 모텔급 호텔인데 작지만 깔끔했다. ​

9/7(土) 3일 차 ​

​어제도 샤워를 하자마자 잠들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했었고 그래서 푹 자고 나니 개운하다. ​

역시 건강에는 걷는게 최고야! 4시 반에 깨어나 어제 일을 적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오늘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로 간다. 저녁에는 음악회도 갈거다. ​

그리 큰 기대은 안 하지만 비엔나에서 음악회를 본다는 것 만 으로도 의미가 있다. ​

어제 푸센에서 잘츠부르크로 오는 중에 버스에서 인솔자로 부터 옵션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인 당 50만원! 좀 비싸기는 하지만 상품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어 몽땅 선택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새벽 6시 인데도 하루 세끼 중 아침이 제일 맛있다.

그리고 치즈와 요플레, 향긋한 커피 맛이 짜릿한 기분을 선사한다. ​

아침을 잘 먹고 잘츠카머쿠프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바다가 없다. ​

그러나 알프스를 끼고 있는 잘츠카머쿠프에는 76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 마다 나름의 개성을 가진 소도시들이 매력적이라고 인솔자는 설명한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여러 호수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할슈타트 마을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비가 살짝 내리더니 지금은 제법 내린다. 케이블카를 타고 샤펜베르크 정상까지 올라가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호수와 산새의 절경을 못 봐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마저도 운치가 있다. ​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관광 3 일째가 되니 서서히 내 머리속의 찌꺼기가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상에는 안개 밖에 없었고 비는 계속 내렸다. 우리는 우산을 받치고 사진을 찍으면서 색다른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호수로 내려오니 비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고, 호수 주변의 시야가 넓어졌다.

​관광객의 형형색색 다양한 우산과 주변의 산새가 이채로웠고, 볼프강 호수 한 쪽에는 큼직한 거위들이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에 여기 저기서 모여든다. ​

이 지역은 유네스코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해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우리는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50여명 정도 탈 수 있는 규모의 크기로, 작고 이뻤다. ​

우리는 이 유람선을 타고 저 건너편에 있는 모차르트 엄마가 살던 외갓집으로 간다. ​

어느 덧 비는 그쳤고 푸른 빛 호수를 감싸는 수려한 산들과 그 위에 안개가 어우려져 우리 일행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배는 아주 천천히 물살을 가르면서 약 50분 만에 볼프 강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다.

​모차르트가 1756년에 태어났고 엄마가 살던 시대이면 300년도 넘었는데 가옥들은 보존 상태가 좋았고, 장남감 처럼 아기자기하다.

​꾸불꾸불한 주택 사이 길도 과히 예술적이다. 마을 한 가운데는 성당이 있었고 그 옆에는 시청사로 쓰였다는 건물들을 보니 여기도 동화의 나라다. ​

특히 노란색 바탕의 성당은 150~200명 정도 들어갈 만한 크기였으며, 벽에 설치 되어 있는 오르간 파이프는 옛 것의 친근감이 느껴졌고, 웅장함 보다는 고귀함이 느껴졌다.​ 점심 때가 되어 귀족의 저택으로 보이는 듯 한 식당에서 얇게 썰은 돈가스를 먹고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로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전통 돈가스 요리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안 맞았었다. 그런데 같은 음식인데도 아내와 다른 분들은 좋았다고 하니 내가 유난한 건지 모르겠다. ​

비엔나로 달리는 차 안에서 인솔자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 난 눈이 번쩍 뜨여 귀를 쫑긋 기울였다.

"오스트리아" 하면 합스부르크 가문이 먼저 떠오른다.

64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음악을 좋아해서 막강한 "권세와 부"를 가지고 음악가를 후원했다. ​

그래서 유능한 음악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엔나에 정착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때부터 비엔나에 음악가의 토양이 만들어져 음악하면 비엔나로 통하게 된다. ​

1,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토와 인구는 줄었지만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움 곳이 있고, 패전 당시 중립국 선언한 으스트리아는 오늘날 국제 기구들이 비엔나에 많고 매년 넘치는 음악회 그리고 제조업, 천연자원도 풍부해서 유럽에서는 잘사는 나라라고 한다.

​비엔나에 도착하면 저녁에 음악회 공연이 있다. ​

이 공연은 여행 욥션 중 제일 비싼 상품이다. 120유로를 환산해 보니 1인당 16만원이나 된다. 비싸긴 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인 만큼 기대가 된다.

​2시간 쯤 지나 투어 버스는 어김없이 휴게소에서 쉰다. 나는 슈퍼에서 "LAUER ZWEIGELT" 와인을 한 병 샀다. 유럽에 왔으니 와인 한 잔해야 하지 않겠는가.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으로는 개인 행동이 힘들니 호텔에서 음미해 봐야겠다. 5시가 조금 지나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곧이어 음악회 가는 팀과 안 가는 팀으로 나누어졌다. 음악회 가는 17명은 현지 가이드와 합류했다.

​그는 "이 음악회는 소규모 실내악 분위기이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새로운 감동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

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시내의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으로 사용했다는 건물 한 쪽에 마련된 음악회 강당은 그 당시 음악회가 열렸던 그 장소 그대로였기에 그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대는 화려한 것도 현대적인 것도 다 빼버린 사람만 현대인이다. ​

선곡된 음악은 관광객이 듣기 편한 곡으로 편성 되어 있어서 영어로만 써 있었는데도 절반 정도는 알아보겠다. ​

나도 클라식에 관심을 가진 지 10년이 넘다 보니 조금은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1부에는 모차르트의 아이네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페르퀸트의 아니트라의 춤 등을 연주했고, 휴식 타임에는 음악회에서 제공한 맥주와 와인를 한잔 마셨다.

​2부에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파파파,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외에 몇 곡이 더 있었고 이어 앵콜곡으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마무리 했다.

연주 시간은 한 시간 10여분 정도로 짧았지만 불과 3~4m 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주자의 숨소리도 느껴졌다.

이 기분, 이 느낌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내도 무척 기쁘고 감동한 것 같다. ​

음악회가 끝나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척 가볍고 흐뭇하다. ​ ​

이제 이 여행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아마도 내일 부터는 시간이 지금보다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

나는 호텔에 도착해 휴게소에서 산 와인을 아내와 같이 반잔을 따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 ​

9/8(日) 4일차 ​ ​

오늘도 아침 일찍 4시에 눈을 떴다.

어제 일들을 노트 정리하고 6시가 되어 1층에 있는 호텔 식당으로 갔다.  딱딱한 빵, 치즈, 요플레, 토마토, 오이, 그리고 카푸치노까지 곁들여 풍성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살았던 음악이 흐르는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쇤부른 궁전, 비엔나의 상징인 성 슈테판 성당,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에 간다.

오늘이 이번 동유럽 투어의 하일라이트가 일 것 이다. ​

그런데 이 많은 것을 5~6 시간 안에 다 보고 저녁 때까지 헝가리에 가야한다.

​8시에 버스에 오르니 어제 저녁 음악회에 동행했던 가이드가 반갑게 인사한다. 오전에는 전 일정이 시내 투어이다.

​쇤부른 궁전은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쉰부른 궁전은 1596년에 지었고 그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시절에 1744~1749까지 6년에 걸쳐 공사를 해서 여왕의 거주하는 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궁전의 외부는 단순해 보였다. ​

나는 가이드에게 "베르사이유 궁전 보다는 소박하네요"라고 했더니 "이때 시기가 계몽주의에 접어들어서 왕이 시민을 의식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저래도 내부는 화려합니다. 자그마치 방이 1441개 이지요. 물론 이 숫자는 하인들이 쓰는 방까지 다 합쳐서지요"

우리는 그 중에 여왕이 거주한 침실 주변의 20개 정도 방 만 본단다. 음식으로 친다면 간 만 보는 것이다.

​궁 안에 들어서니 1층에 바닥이 시선을 끈다. 육각모양의 나무 말뚝이 바닥에 총총히 박혀있었다.

​왕실에 출입하는 마차와 말발굽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나무를 박아 놓았다고 한다. 2층 홀에는 왕실에 들어오는 하객 대기실이 있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니 각 방마다 용도가 있었다. 여왕이 자던 침실, 금박으로 장식된 100만 굴덴의 방 등 왕실의 화려함을 직접 눈으로 봤다.

​마리아테레지아의 침실은 나폴레옹이 침략했을 때 거처로 쓰기도 했단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마리아테레지아 여왕이다. ​

그녀는 서민의 교육, 의료 복지를 중요시 했고 이것이 유럽의 복지 제도에 시초가 된다. ​

어쨌든 640년 동안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차대전 패망 후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

약 2시간을 관람하고 클림트의 "키스" 작품이 있는 벨베데레로 향했다. ​

벨베데레 정원에 들어서니 외관은 쇤부른 궁전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훨씬 아름답다. ​

궁전 안에는 생각한 것 보다 많은 그림이 있었다. ​

클림트 작품 외에도 서양미술사에서 많이 봤던 에곤실레의 그림도 여러 점 있었고 누구나 보면 아는 "불가능은 없다"의 나폴레옹의 그림도 보였다. ​

클림트의 "키스" 그림의 설명을 가이드에게 들으면서 이 유명한 작품을 자세히 보고 또 봤지만 아내에게 웃으면서 "잘 모르겠군"이라고 말했다. ​

그렇게 한 시간을 감상하고는 기념 사진을 찍고 나와 다음 코스로 이동하면서 투어 버스 안에서 책을 보니 우리가 본 것은 상궁에 전시된 것의 일부이고,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이 벨베데레 궁전에는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는데 상궁에는 19~20세기 오스트리아 현대미술을 전시해 놓고 하궁은 중세, 바로크 시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책 내용대로 그림을 다 보려면 이틀은 걸릴 것 같다.

우리는 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비엔나의 마지막 코스인 슈테판 대 성당으로 이동했다. ​

버스는 아주 천천히 그라벤 거리를 지나갔다. 여기는 프랑스 상떼레제 거리를 본 떠 만들었다는 곳 인데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닫혀 있었다.

​성당까지는 투어 버스가 못 들어가 근처에 내려 10여분을 비엔나 도심을 걸었다. ​

성 슈테판 대 성당은 1160년에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 "성 슈테판"을 기념하여 지었다. 길이 10m, 높이 136m의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

이곳에서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고 여기서 장례식을 치루어 유명하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광장이 있는데 과거에 여기는 시장 통이 이었다고 한다. ​

성당 입구의 왼쪽에는 길이가 다른 철로 된 사각 막대기 2개가 있었는데 위에 있는 것는 짧았고 아래 에는 긴 것이 수평으로 박혀 있었고, 오른 쪽에는 원형 링이 박혀 있었다. 가이드가 이것이 무슨 용도로 쓰여 졌는지 아냐고 물으면서 이유를 알려준다. 막대기는 길이를 측정하는 "자"이고 원형은 빵 크기를 재는 "틀"입니다. ​

지금이나 그 때나 사람 사는 곳이면 속고 속이는 상술은 어쩔 수가 없다.

이어서 가이드는 지금부터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한 시간 반 동안 자유시간을 드릴 테니 노천 카페에서 커피한 잔 마시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권한다. ​

성당에서 343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136m 나 되는 성당의 남 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비엔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나니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이드 말대로 노점 카페에 가기로 했다. ​

여기 저기 몇 군데의 카페 중 성당 탑이 제일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가이드가 말한 verlangerter와 enspaner 두 잔을 시켜 놓고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었다. ​

비엔나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무언가가 있다. 거리에는 각종 오페라 공연을 홍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냥 걷기만 해도 볼거리가 많았다. ​

그렇게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비엔나를 떠나 헝가리로 방향을 잡았다.

​비엔나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2시간이 됐을 때 투어 버스는 휴게소에 들렸고 그 휴게소에는 대형 화물차 우리나라 화물차에 두 배정도 되는 아주 큰 차들이 50여 대가 휴게소 주차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근처에 아주 큰 산업단지가 있는가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버스에 승차하여 부다페스트를 가는데 인솔자가 아까 봤던 화물차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

유럽의 토, 일요일에는 화물차의 운행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 곳에서 쉬고 있는 것이고 운전기사 입장에서 돈들여 호텔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주차장이 숙소이자 휴식처라고 했다.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

네 시간 가까이 걸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들어서니 낡은 차들이 많이 보인다. ​

하긴 오스트리아는 1인당 GDP "5만 3천불"인데 "1만 3천불"인 헝가리에 왔으니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헝가리는 한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절(1867~1918)에 합스부르크의 통치를 받았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여성 현지 가이드가 탑승했다. 가이드는 목소리만 아름다운 여자라고 소개한 뒤 헝가리 역사에 대해서 말한다.

​부다는 부자가 살았던 지역이고 부다 왕궁이 있으며 겔레르트 언덕이 강기슭에 뻗어 있다.​ ​

페스트 지역은 상업지역이고 온천이 유명하다. 루마니아 화산지대의 지열이 헝가리까지 흘러와 온천이 유명하다고 했다. ​

시내에 들어서니 1000년 된 성당, 오페라 하우스, 영웅 광장 등 곧곧에 있는 건축물을 설명하는데 말도 참 잘한다. ​

그리고 유명한 피아니스트 프란트 리스트가 헝가리 출신이고, 헝가리에는 프란츠 리스트 공항이 있다. ​

우리는 헝가리 역사를 들으며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 지르는 다뉴브 강 선착지에 7시가 조금 지나 어둑어둑해 질 무렵에 도착했다. ​

다뉴브 강은 알프스 산맥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지나 흑해로 빠져 나간다. ​

길이만 해도 2858Km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수송 항로이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선선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황금 빛 으로 물들은 국회의사당, 별처럼 반짝이는 세치니 다리를 감상했다. ​

국회의사당 강 건너편에는 겔레르트 언덕 위에 소녀의 동상이 눈길을 끈다. 겔레르트 언덕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엔 독일이 주둔했고, 그러다 1944년 마침내 소련군이 침공한 기념으로 1947년 시타델러 꼭대기에 높이만 무려 40m에 달하는 소녀의 동상, 이른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

이 소녀는 두 팔을 지켜든 채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를 펼쳐 들어 보인다. "소련군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징표인데 그 때의 아픔과 치욕을 되새기고자 철거하지 않았다고 한다.

헝가리도 오스트리아와 소년의 공산치하에 있었던 아픔의 상처가 많은 나라인 것 같다. ​ ​

9/9(月) 5일 차 ​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어제 일들을 메모, 정리하면서 잠시 생각한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끔은 여행을 통해서 삶에 활력을 넣어야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

것을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

이제 이 여행도 낯설음도 사라지고 적응이 되고 있다. 같이 여행 중인 일행들의 얼굴도 익숙해 졌다. 

우리 일행은 70대 부부 팀 5명, 아들, 딸과 같이 온 부부 팀 4명, 60대 후반 부부 4명, 딸과 같이 온 부부 6명, 그리고 40~50대 부부 팀만 10명 등 총 31명이다.

오늘도 '여행의 즐거움은 아침 식사부터' 라고 말하면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8시에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어제 유람선을 마치고 올 때는 30분밖에 안 걸린 거리가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과 겹치면서 부다 왕궁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조금씩 내리다가 많이 내리고 또 조금 또 많이 내린다. ​

우리는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을 외부만 보고 이동했다. "그야 말로 볼 것도 없는 외관은 왜 보러 왔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코스인 "성 이슈트반 성당"으로 갔다. 50년 동안 지었다는 이 성당은 1905년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

이 성당에는 이슈트반이 가로줄이 두개인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상이 있었는데 이 십자가는 교황청으로 부터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부여 받았고 헝가리만 이 십자가를 사용한다. 돔의 높이는 국회의사당과 같이 896년 건국을 기념하여 96m에 맞춰져 있다. ​

그리고 이 곳은 성지 순례지로 꼭 들려 할 곳이라고 가이드는 강조했다. ​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의 자유 시간을 갖고 나서 2시에 체코를 향하여 버스를 탔다. 비엔나에서 헝가리까지 네 시간이나 걸려 왔는데 오늘도 그냥 고생해서 온 것에 비하면 내용이 아쉬웠다

만약에 여기 올 시간에 비엔나에 있었다면, 오고 가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하루의 여유가 생긴다.

​만약에 자유 여행을 한다면 비엔나에 있다가 바로 체코로 넘어 가겠다. 그러나 패키지의 한계를 즐겁게 받아들여야지. "그래, 그래야지"

우리는 부다페스트를 떠나 슬로바키아를 거쳐 부르노에 간다. 거기서는 저녁에 잠만 자고 내일 아름다운 중세 마을 체스키크룸로프로 갈 거다.

​헝가리 국경을 넘기 전에 휴게소에 들렸다. 그런데 휴게소 화장실 입구에 10m나 줄을 섰다. 입구에는 우리나라 지하철 게이트 처럼 되어 있어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도심 화장실은 유료라지만 고속도로 휴게실까지 유로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

이런 것은 정책적으로 바꾸고 싶은 문화이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안 불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려는데, 거기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매장 점원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바쁘기만 할 뿐 엄청 느리다. 창원 팀은 음료수 한 병 사려고 줄 서 있다가 "안 사먹고 말지" 하면서 음료수를 놓고 나왔다. ​

이 팀이 점심 때 우리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을 샀는데 내일은 내가 커피라도 사야겠다.

​체코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도서관에서 빌린 만화책 "발칸반도의 나라들"을 읽었다.

발칸반도는 헝가리 바로 아래에 있는 발칸산맥 지역이고 발칸은 터키어로 "산맥"을 뜻한다. ​

발칸반도는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 한 가운데 놓여 있어서 유럽, 러시아, 아시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끊임없이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가 있다. ​

책을 읽으며 그 안을 들여 다 보니 너무 복잡해서 정리하기도 힘들다. ​

어쨌든 8개 나라 정도가 있는데 그 나라는 유고슬라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이렇게 여섯 나라이다. ​

1차 대전이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두 명의 세르비아 청년이 암살해서 일어난 것이다. ​

그 여섯 나라 중 슬로베니아는 알프스 산 경치 좋은 곳에 있어서 유고 연방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화된 나라이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나니 6시가 다 되었고 곧 체코 부르노에 도착했다. ​

인솔자는 간단히 체코를 소개한다. 체코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로 나뉘는데 체코는 보헤미아지역이고 부르노는 모라비아 지역에서가장 큰 도시이다. 체코는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다.

​부르노에 도착하여 저녁은 중국식으로 닭고기튀김, 고기 감자볶음 등 그럭저럭 먹을 만 했는데 점심 먹고 버스 안에서 4시간 동안 꼼짝 안 하고 있다가 저녁을 먹으니 몸이 찌푸등 했다. ​몸은 역시 많이 움직여야 돼! 호텔에 들어오니 지금까지 잤던 호텔 중에 제일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다. ​

오늘은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 했고 피곤을 풀고 싶어 와인을 두 잔 마시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

​ 9/10(火) 6일 차 ​

​여행을 시작한 지 6일 째가 되니까 그제가 어제 같고 이때가 저때 같은 게 많이 헷갈린다. 만약에 지금까지 안 적었으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뻔 했다. ​ 매일 기록하기 잘했다.

7시에 아침식사 하러 로비로 내려갔다. 어제 인솔자가 아침 식사는 로비에 내려와서 어디로 가라고 했는데 생각이 안 난다. ​

로비에서 카페& 레스트랑 직원에게 서툴은 영어를 하니까, 남자 직원은 양팔을 벌리며 없다는 포즈를 취한다. 내 언어가 잘 안 통한다는 생각에 인포메이션으로 가서 다시 물었다. 업무를 보던 여성 직원은 조금 전 그 레스트랑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

우리는 레스트랑 으로 가서 빵과 치즈, 그리고 커피를 맛있게 먹었다. ​

그런데 식당에 우리 일행이 안 보인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패키지 여행객 식당은 2층이었다. 다행이 그 레스트랑에도 같은 메뉴였다. ​

아침에 가벼운 헤프닝을 벌이고 8시에 버스를 타고 "체스키크롬로프"로 출발했다.

​인솔자는 목적지 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아니, "체스키크룸로프"란 동네 이 근처에 있는 거 아니었나! 그렇게 먼 거리였으면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지 원!

​역시 나는 까다롭다.

나는 "불평인가? 아니면 진정 말 할 만 한 주장인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투어 버스는 정확히 두 시간 만에 휴게소에 들렸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한 시간 가량을 울퉁불퉁한 고속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버스는 달렸다. 인솔자는 헝가리나 체코 , 슬로바키아 등 이 지역은 국가 경제력이 약해 도로를 보수 할 여력이 없단다,

그리고 예전 부터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자주 씻어도 피부에 안 좋아 잘 안 씻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평생 10 번 만 씻었다니, 믿거나 말거나!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도시 명을 몇 번을 외어도 잘 생각나지 않는 체스키크룸로프에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을 보는 순간 차 안에서 답답했던 기분이 싹 사라진다. 어쩌면 집들이 장난감 같을 까?

옹기 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색깔, 모양들이 정감이 간다. ​

마을 한 복판에 흐르는 "S" 물결의 불타바 강과 그 주변에 있는 주택과 언덕 위에 세워진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

불타바 강은 체스키그룸로프에서 시작하여 프라하를 거쳐 독일 직센지방 엘베 강에서 만난다.

여기에 있는 멋진 성,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1250년에 지어졌으며 지주가 몇 번 바뀌었고 나중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인수해서 그 성을 에겐베그 가문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하니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

이 마을에 오스트리아 벨베데로 궁전에서 그림을 봤던 에로틱 화가 에곤실레 미술관도 있다. 중세 마을의 유래를 인솔자에게 약 30분 들으면서 마을 구경을 하고 점심에는 인솔자가 권하는 체코 흑맥주를 마셨고, 전통 음식도 맛있었다. 체코가 버드와이저 원조이며 맥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

체코의 속담에는 "맥주가 있는 곳엔 인생이 즐겁다"란 말이 있다.

맥주 몇 잔으로 저녁을 대신 하기도 하는 체코인은 "저녁을 마신다"라고 표현하고, 맥주를 흐르는 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사가 끝나고 또 단 한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

이제는 자유 시간과 전투를 해야 할 지경이다. ​

한 시간 만에 어떻게 다녀야 할 지 난감하다. 최소한 반나절은 있어야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마을도, 미술관도 포기하고 "높이 솟아 있는 체스키크룸로프 성이라도 봐야겠다고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

불타바 강의 목조 다리를 건너 마을의 아기자기한 건축물을 보면서 언덕을 지나 성 앞에 올라오니 체스키크룸로프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여기서도 또 한 번의 동화 속의 세계가 펼쳐졌다. 벽과 벽 무늬를 만져보고 자세히 봤다.

과연 나는 집에 가서도 이런 감정이 살아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진기에 담고 또 담았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막상 자리를 뜨려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본질의 가치를 잘 깨닫게 되는 때는 아마 그것과 멀어지려고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사는 것이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이 듯 이... ​

우리는 투어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출발했다. 프라하에 들어서니 프라하역이 우리를 반긴다. ​

유럽 어디에서 출발하든 체코에 들어오려면 먼저 프라하 역에 와야 할 정도로 체코의 관문이라고 한다. ​

그 만큼 체코의 중심지는 프라하이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

중간에 휴게실에 들렀는데 거기는 화장실이 무료였다. 매일 휴게실에 쉴 때 유로 화장실만 다니다가 무료 화장실을 쓰니 50센트 아낀 것 보다 공짜로 사용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사람의 기분이란 이런 것이야, 돈 보다 우선인 것이 감성이다. ​

휴게실에서 10유로 지페를 주면서 커피 두 잔을 시켰는데 체코 돈으로 거슬러 주면서 유로화가 없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No problem"

여기 커피향이 좋다. 헝가리에서 체코 부르노로 올 때는 커피가 식어서 맛이 별로였는데 여기는 따뜻하고 향기도 짙었다.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 30분을 가르켰다.

체코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전에 젊은 한국인 남자 현지 가이드가 탑승해서 자기소개를 한다. ​

2008년에 체코에 왔고 나이는 38세 이고 결혼한 지는 2년 되었고 아내는 한국인이라며 묻지도 않았는데 자세히도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상당히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곧 이어 구 시가지를 안내하면서 가짜, 소매치기 애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그를 보면서 그동안 속고만 살았나, 아니면 삶이 많이 힘들었을까? ​

가이드 말로만 세상을 해석하면 삭막하다. ​

구 시가지에 들어서니 아담하고 운치 있다. "이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입니다. 500년 되었죠. 저기에 있는 건물을 바로크 양식입니다. 300년 되었구요.

​지금 그 건물을 이렇게 상점으로 또는 사무실로 아무런 불편 없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으니 대단하지요"하고 말한다.

​한 시간 정도 시내를 들러 보고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200m 쯤 떨어진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7시에 자유 시간을 가졌다.

​광장에는 갖가지 먹 거리가 있었고 조금 있으면 여명이 생길 것이다. 틴 성당 앞에는 "불 쇼"를 하는데 재주(실력)보다는 말 재주 더 많다. 재주를 보려면 한 시간을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장소를 옮겼다. 광장 다른 곳으로 오니 집채 만한 곰돌이 두 마리가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나는 동전 하나 모금함에 넣고 사진을 찍었다.

​그 곰돌이가 고맙다는 인사로 아내를 살포시 감싼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는 뭔가 중요한 것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

시간이 지나 여명이 절정에 이르자, 주변의 여기저기서 가로등의 노란색 불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8시 정각에 600년이 된 천동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천문 시계 탑에서 그리스도 열 두 제자 조각상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진다. 딱 20 초 동안만 움직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쉬운 표정으로 혹시나 하고 계속 쳐다본다. ​

이 광장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청동상이 있다. 1415년에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비난하다 화형에 처한 "얀 후스(Han Hus)의 기념비이다. ​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에 세워졌다. 책에는 위대한 체코인 순위에 7위로 되어 있었다. ​

그 기념비에는 얀 후스 사상인 "진실을 사랑하고 진설을 말하고 진실을 행하라"는 라틴어 문구가 있다고 한다. ​

천문 시계의 종소리를 듣고 나서 천천히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러 오늘의 마지막 장소인 카를교에 갔다. ​

다리 입구에는 체코인 인기 1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의 동상이 있었고 간 건너 멀리 프라하의 성이 보인다.

​여명이 지나서 밤하늘은 어두었지만 불타바 강과 프라하성의 자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체코! 모차르트 일생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몽땅 체코에서 촬영했단다. ​

야경 투어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프라하의 봄"을 떠 올려 본다. "프라하의 봄"이란 말은 1968년 민주화 시위 중 소년군 탱크 위에 올라 체코 국기를 흔드는 이 장면을 본 한 외신 기기의 "프라하의 봄은 올 것 인가?"라는 신문 캡션에서 나온 말이다.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다. 진정한 자유는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 그 자체인 것이다. ​

이렇게 프라하의 밤은 저물고 있었다. ​

​ ​9/11(水) 7일 차 ​

4시에 화장실에 가려고 잠에서 깼다. 다시 누우니 정신이 말짱하다. 그래서 카톡을 보니 딸 에게 메시지 한 통이 와 있다.

"조은 아침" 이란 메시지가 반가웠다. 요즘 애들은 "좋은"을 "조은"이라고 쓰는가 보다. ​

지윤이 에게 프라하 야경 사진을 보내며 몇 글자 보냈다.

"지윤이 가 아빠 엄마 없는데도 열심히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니 고맙고 안심이 되 네" 칭찬의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잠을 청했다.

​6시에 다시 일어나 아침 먹으러 복도를 나서는데 각 층 마다 군데군데 비틀즈 사진과 그 시대의 음악인의 사진들이 흑백으로 실물보다 더 크게 액자로 걸려 있었다. ​

아침을 또 맛있는 빵과 치즈 그리고 요플레와 커피를 마시고 다시 복도로 와서 아내와 나는 신나게 비틀즈와 한 몸이 되어 포즈를 취해본다.

​아무거나 여행지에서 보는 것들은 다 새롭다.

​오늘 투어는 오전에 프라하 시내를 둘러보고 온천수를 마신다는 카를로비로 간다. ​

호텔에서 한 시간 걸려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프라하 성에 도착했다. ​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나서 프라하 성 입구에 들어서니 좌우에 조각품처럼 서있는 초병이 보였다.

​성 안에는 앞에 대통령 직무실이 있었고 왼쪽에는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 비타 성당이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첨 탑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 성당은 카를 4세 때인 1344년에 지어졌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개축과 중축을 거듭하여 1919년에 완공되었으니 역사가 길다. 그래서 이 건물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프라하 성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성 비트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체코가 자랑하는 아르누보의 대가 알폰소 무하의 작품이다. 무하의 작품들은 상당히 장식적이며 마치 만화를 보는 듯, 그리고 무엇보다 난해하지 않으며 비교적 쉬워 가까이 하기 편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니 좌우의 창들에 가득 채운 스텐인드글라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그림 쪽에는 유료 게이트를 만들어 놓고는 10 유로 받고 있었다. ​

좀 더 가까이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자유 시간을 딱 10분 만 준다고 해서 그냥 멀리서 감상하기로 했다. ​

우리는 성당을 다 보고 대통령 궁을 나서려는 데 마침 궁 초입에서 초병들의 교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

세 명이 군인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성큼 성큼 오더니 규칙적인 동작을 보면서 나도 한 때 군인 생활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어느 덧 올해 내 나이가 환갑이다.

​다음 코스로는 별 볼일도 없는 쇼핑 삽에서 호박 보석과 크리스탈 보석을 구경하고 나서 옵션 상품인 클래식 카를 타고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라갔다.

​이미 시간은 정오가 다 되어 햇살이 따가 왔지만 한 눈에 보이는 빨간 지붕과 불타바 강은 있는 그대로 좋았다.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면서 잠시 음악의 도시 체코의 음악가를 떠 올려 봤다.

​불타바 강 하면 보헤미아 작곡가 스메타나 가 있고,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드보르작"도 있다. 나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과 신세계 교향곡 9번이 좋다. ​

그 중에 9번 2악장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좋다. 누구나 과거의 아픈 상처 하나 쯤은 있기에...

​그 외에도 체코에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가도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나는 중 1 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그 때는 멋모르고 읽었지만 말이다. ​

아무튼 2 차대전 당시 독일이 체코를 진격했을 때 무조건 항복해서 피 한 방울 안 흘렸고 그 때문에 중세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으며 그 덕에 오늘 날 GDP의 70%가 관광 수입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 하다.

​우리는 여기서 프라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미네날 온천수가 있다는 카를로비바리로 출발했다. ​

카를로비바리는 14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가 사냥을 하다가 발견했다는 곳이다. ​

그리고 매년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치료 목적으로 마신다는 온천수를 마셔보니 따뜻하고 쎈 맛이 느껴진다. ​

온천수의 온도는 61도 라고 적혀 있었다. ​

체코의 마지막 코스인 이 곳을 떠나 국경을 넘어 독일의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

독일에 오니 대번에 부자 동네의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벤츠가 많이 보인다. 건물도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

오늘 저녁에 자고 갈 이 마을은 중앙에 작은 성당이 있고 가옥은 100여 채가 있다. 집들은 귀족이나 부유층 들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 된다.

​호텔의 내부는 리모델링 했는데 창문과 문틀 등 사소한 것에도 꽤 신경을 써서 지은 것 같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7시가 조금 지나 1층 식당에 들어서니 파티장에 온 기분이다. 은은한 노란색 전구 불빛에 천정은 둥근 반원형 구조이다.

​건축물 뼈대는 굵직한 목조가 들어가 고급스럽다. ​

우리에 자리는 창원 부부팀, 아들과 같이 온 깔끔한 남자와 같이 독일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동유럽 여행 소감을 나누었다. ​

그리고 다 같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호텔에 돌아와서 씻으려 하는데 밖에서 우리 방을 노크한다.

누군가 하고 문을 여니 청주 부부 팀이 "그동안 신세 많이 졌는데 내려가서 맥주 한 잔 어때요" 라고 말을 건넨다. ​

우리는 1층 레스트랑에서 맥주 2잔을 시켜 놓고 청주 팀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

아저씨는 어느 시골에 지구대 경찰 지구대장이었고 올해 정년 퇴직 해서 백수라고 말씀하신다. ​

나는  "공무원이면 연금도 나오고 노후 걱정 없을 텐데나 백수란 말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다는 의미 아닌가?"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 분의 말씀을 들었다.

"공무원 생활만 하다 보니 사고도 단순해 졌는데 이번 여행에서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도 해 보면서 많을 걸 배우고 갑니다. "

​나도 그 말에 공감했다. ​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비교 당한다. 살아있는 한 그렇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더 나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

나도 대화에 한 마디 말을 보탰다.

"저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또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생소하고 낯선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머리속에 담아 가네요"

이렇게 이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 ​

9/12(木) 8일 차 ​ ​

오늘은 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6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독일의 중세시대의 유적지, 밤베르크로 갔다. ​

밤베르크에는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밤베르크 대 성당이 있다. ​

밤베르크에 도착하여 성당 앞에 서니 4개의 첨탑이 (81m) 꽤 위압적이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다시 말해서 그 시대에 교리를 어기면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끌고 갈 것만 같다. ​

그 만큼 성당 자체에 느끼는 엄숙함이 있었다. 성당은 언덕 위에 지어졌는데 언덕 아래에는 밤베르크 마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체코에서 보던 프라하와 많이 닮았다. ​옅은 붉은색 지붕에 건물 바탕은 옅은 노란색 또는 회색이다.

​성당 내부를 감상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독일 중세 시대에 형성된 마을이 그대로 잘 보존 되어 있었다. ​

중세 건축물의 특징은 외벽에 목재 기둥을 지그재그 형식으로 문양을 넣은 것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집들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집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서로 층 높이가 다르다. 집들 사이에 틈새가 없게 지은 이유는 겨울에 바람을 막아 주고 또 적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게 성벽 역할을 한다고 했다.

중세 시대를 일컬어 예술적으로 잃어버린 천년이라고 했는데 건축은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 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아무튼 흉내 내기 힘든 무언가가 있고 아름다움에 깊이가 있어 보인다. 밤베르크 마을을 두 시간 둘러보고 10시에 버스를 타고 종착지인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

​어제 저녁에는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고 11시에 잠들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우리 같이 오기를 참 잘한 것 같아"라고 말을 건넸다. ​

이 말에 아내도 참 좋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사실 이 여행을 처음 준비 하기 전에는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역사를 알고 싶어 11월 경에 터키를 혼자서 가려 했었다.

그런데 니체와 칸트의 책을 읽고는 계몽주의 사상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 동유럽 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여행을 계획했다. ​

어느덧 밤베르크에서 두 시간을 달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

프랑크푸르트는 허브 공항이고 유로 화페를 여기서 찍어내고 증권, 금융을 중심 도시라고 인솔자가 설명한다.

​우리는 Han Kun 식당이란 간판이 달린 한국식당에서 순두부찌게와 김치를 먹었다.

역시 아무리 빵이 맛있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김치에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

​우리는 점심을 맛나게 먹고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면세점에 갔다. 그동안 꼬미, 노루와 잘 지내고 있는 사랑하는 딸 선물을 샀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꼬미는 태어난 지 3년 됐고 얼마 전에 처가 집에서 데려 온 노루는 4개월 밖에 안 되어 무척 귀엽다.

아내가 고른 스와로브스키 목걸이가 지윤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프랑크푸르트공항 가는 투어 버스 안에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 생각에 잠기고 또 쓰기를 반복하는데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를 보니 그동안 여행한 감상을 짧게 보냈다. ​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를 바라보니 표정이 밝다.

우리는 뒷 자리 몇 개가 남아 편하게 각자 떨어져 앉자서 여행했다. 그렇게 동유럽 여행은 서서히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 가는 가?

​음악의 중심지  비엔나, 체코는 많이 들었지만 그저 먼 나라 였었다.

​​​막연히 기대했던 문학, 철학에 대한 소득은 없었지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이야기며 비엔나에서 음악회도 갔고 중세의 건축물도 매력적이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매일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고 매일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면서 사색하고 또 시간이 흐르면 배 고파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하는 반복이 반가웠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

이 순간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겪려와 용기를 주어야 한다. ​

또한 아내와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여행 기간 동안 24시간 아내를 보면서 앞으로 잘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

 "춤을 추듯이 살아아, 너의 인생을 가볍게 하라"는 니체의 말을 곱씹어 본다. ​

끝으로 여행 첫날 배가 아파서 힘들때 열심히 지압을 해주신 인솔자 문현정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지출은 있었지만 가치 있게 썼다는 자부심으로 내년에도 여행을 계획해 보기로 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

                                                                                                                            2019. 9. 19.

다녀오신 상품
온라인MD팀 2019.09.25 15:49

안녕하세요 고객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단어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해당 지역 담당으로서, 고객 분들이 현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즐겁게 여행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지만, 준비 외적으로 현지에서 고객 분들이 얼마나 여유롭고 넓은 마음으로 여행을 즐겨주시는 지에 대한 부분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세삼 깨닫게 된 후기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여행하신 멤버 분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지셨을 고객님의 여행이 평생에 남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